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나미노 요코 (문단 편집) == 이야깃거리 == * 아이돌 시절의 매력 포인트는 앞니.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325456.jpg|width=100%]]}}} || * 학창 시절 운동 신경이 학교에서 가장 나빴다. 50m 달리기는 매번 10초 이상이었고 앞구르기도 전혀 못해서 자주 아픈 척하여 체육 시간을 쉬었다. * 데뷔 곡의 원 제목은 천사의 손수건이었지만 처음 하는 리코딩이 너무 부끄러워 2일이 지나서도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 못하고 스튜디오를 빌리는 마지막 3일째 되는 날 스태프들의 도움으로 겨우 리코딩을 마쳤고, 그걸 본 작사가가 제목을 변경한다. * 데뷔 초 팬레터에 감격하여 직접 감사 전화를 한 적이 있다. * 데뷔 초의 목표는 아이돌 잡지 ‘MYOJO’와 [[더 베스트 텐]] 스포트라이트에 나오는 것이었다. * 1986년에 발매한 사진집 ‘陽子をひとりじめ’는 일본 연예인 역대 사진집 매출 부수 랭킹 8위에 올라있다. * ‘[[스케반 형사#s-2.3|스케반 데카]]’의 주연으로 낙점 되자 첫 주연이 되는 것에 대해 기뻐했지만, “철 가면을 쓰고 있다”라는 설정을 알고나서 “[[슈트 액터]]인가...”라고 몹시 낙담했다. * ‘[[스케반 형사#s-2.3|스케반 데카]]’ 출연 당시 [[톤네루즈]]의 이시바시 타카아키가 그녀와 마주쳤을 때 너무 예뻐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 ‘[[스케반 형사#s-2.3|스케반 데카]]’ 촬영이 끝나고 찢어진 옷에 분장용 피나 폭약이 그대로 묻어있는 상태로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등교하는 일도 있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4211223.jpg|width=100%]]}}} || * 1988년 [[더 베스트 텐]]에서 ‘[[秋からも、そばにいて]]’를 부르고 있었을 때 가사를 잊어 손을 부르르 떨며 매우 당황해하는 사건이 있었다. 노래가 끝나고 나자마자 눈물을 머금으며 “대단히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라고 고개를 90도로 숙여 사과. 그 당시에는 “당장, 가수 그만둬”라고 생각했고 나중에 회상할 때는 “이제 내 아이돌 생활은 끝이겠구나” 했다고.[* 쿠도 시즈카가 대기실에서 요코의 절친인 [[혼다 미나코]]의 남자친구였던 [[히카루GENJI]] 모로호시 카즈미에 대해 안 좋게 발언해 다투게 되면서 그 일 때문에 잊어버렸다는 말이 있었다.] * [[1990년]] 영화 ‘白い手’에서 아이카와 쇼와 했던 키스신이 본인 인생에서 첫 키스였다. * 중화권에서는 '난예양즈'로 부른다. * 호리코시 동급생인 [[오카다 유키코]]와 절친했으나 [[1986년]] 자살, 또 다른 동급생이자 절친 [[혼다 미나코]]도 [[2005년]] 백혈병으로 사망하였는데 무대에 서던 중 비보를 듣고 그대로 쓰러져 오열하였다. * 소속사복이 없는 연예인을 꼽자면 가장 먼저 이름이 나오는 인물이 바로 난노인데, 첫 사무소인 에스원 컴퍼니는 영세한 규모에 소속 연예인에 대한 처우도 가혹한 [[블랙기업]]이었고, 첫 급여는 월 3만엔, 그 다음 해 급여가 월 4만엔이었다고 한다. 80년대 여성 듀오로 인기를 끌던 [[BaBe]]도 에스원 컴퍼니 소속이었는데 한참 잘 나갈 때도 7만엔 받았다고 폭로할 정도의 사무소라 계약 종료 후 독립하자 바로 망해버렸다. 하지만 소속사 도산 시 사장이 본인도 모르게 회사의 명의를 본인으로 돌려버린 후라 버블이 붕괴한 90년대에 회사의 부채를 모두 직접 지게 되었고 그 빚을 20년이 훨씬 지난 2010년대에 겨우 갚았다. * 배우쪽 사무소였던 극단 청년좌도 당시엔 규모에 비해 문제가 엄청나게 많은 회사였는데 드라마가 히트치자 스케줄을 이중으로 잡고 미친듯이 굴려서 결국 주간지엔 미나미노 요코가 스케줄을 펑크 냈다느니 하는 기사가 떴다. 충분히 규모가 있는 소속사임에도 이런 대우라 현장에서 매니저들에게 이건 너무하지 않느냐고 울면서 화를 내자 이번에는 성격이 나쁘다느니, 제멋대로에 건방지다느니 하는 루머가 매니저들에게서 흘러나와 주간지를 달궜다. 이는 결국 1990년에 개인 소속사인 케이 대쉬로 독립하고서야 그나마 어느 정도 해결이 된다. * 아이돌 시절 인생의 목표로 “데뷔 5년 후인 23세 생일에 결혼식을 올리고 은퇴하여 아이 둘을 낳고 남편은 70세 본인은 73세에 세상을 떠난다”라는 공약을 했으나 실제 결혼은 43세가 된 [[2011년]]에 했으며 아이도 없다. * [[2012년]]에는 [[호리코시 고등학교]] 출신 [[모리구치 히로코]], [[니시무라 토모미]]와 함께 ‘Blooming Girls’를 결성, 음반 활동을 하기도 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765733.jpg|width=100%]]}}} || * [[2016년]] 2월에는 가수 활동을 그만둔지 25년 만에 첫 솔로 콘서트 ‘NANNO 30th ANNIVERSARY’를 개최하여 호응을 얻었다. 같은 해 6월에는 인기에 힘입어 추가 공연을 열기도 하였다. 25년 만에 다시 여는 무대라 감회가 새로운 듯 감격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4412248.jpg|width=100%]]}}}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